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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군인아저씨의 잡담 :::

다녀간 이 6,347
오늘 1 명, 어제 3
daisy rss
2010/06/08 21:05
4시부터 여기저기서 짐싼다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지리산 오기 전날에도 준비한답시고 잠을 거의 못잤는데, 그나마 대피소에서 충분히 자고나니 몸이 많이 개운해졌다..라고 생각했는데 몸을 일으키자마자 어깨부터 다리까지 온 몸에서 통증이..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벽소령 아침 풍경. 어제만 해도 잔뜩 찌푸리고 비 올 것 같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개었다. 날도 흐린데 굳이 일출볼거 있냐며, 오늘 천황봉 들렀다 바로 하산할 생각이었는데 날이 너무 화창해서 고민이 되었다. 막 나왔을때만 해도 출발 준비하고 밥 해먹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장터목까지 가는 시간이 널널했던지라 밍기적대다보니 다소 한산해진 풍경. 오른쪽 아래 깔깔이 입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밥 태워먹은 일행들만 아니었으면 한결 여유로운 아침이 되었을건데..


같이 다니시자는 분은 일찍 밥 해드시고 이미 출발하시고, 터덜터널 내려가 밥 해먹을 준비 하려는데 혼자 밥 먹냐며 밥주님 일행에 붙잡혀 다시 누룽지에 라면을 얻어먹었다. 당신들은 세석에서 밥 먹을 생각이니 가서 기다리라는 말씀까지.. 자꾸 신세만 지는 것 같아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겠어서 찍어드렸다. 더불어 세석에는 들르지 않고 오늘 종주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벽소령을 나서니 이미 7시. 시간이 늦어 이것저것 준비하고 다시 길을 떠나려고 등산화를 신는데 왼쪽 복숭아뼈쪽 통증이 심했다. 아마 등산화에 적응을 못한 탓이리라. 다른 곳은 몸이 풀리면서 그럭저럭 괜찮아졌는데 여기만큼은 한동안 계속 아팠다. 고통이 덜해진건지 적응한건지 나중에는 그럭저럭 다닐만 해졌지만..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고나니 같이 다니시자는 분이 요기있네? 밥주님 일행도 사진엔 없지만 뒤에 계시고, 오른쪽 분은 대피소에서 40대밖에 안되는 어린 놈들이 밤새 떠드는 통에 잠을 못주무셨다고.. 이 말씀에 올해로 마흔아홉 되시는, 같이 다니시자는 분께서 너털웃음. 흠 이제 갓 서른 넘은 갓난쟁이가 낄 자리가 아니구만. 조금 더 가서 있는 선비샘에서 커피나 한 잔씩들 하자는 말씀에, 요새 걸리면 짤 없이 50만원 내야 한다고 해서 이 곳에서 마시기로 모의하셨다. 나는 오늘 종주를 끝낸단 핑계로 커피를 마다하고(벌금이 아까워 커피도 안마시고 가냐는 농담에 웃음으로 답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얼마 안걸려 선비샘에 도착. 세수하시는 분은 태극종주 하신다고 3일간 물을 못봤는데 너무 반갑다며 물 앞에서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어푸어푸어푸 어푸어푸어푸. 난 태극종주는 고사하고 화대종주도 버거울 것 같은데 아무튼 훌륭한(?) 분이다.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것 같아 준비해 온 모자를 쓰고, 손수건으로 목등을 햇빛을 가려보았는데 어색해서 얼마못가 떼어버렸다. 이 때 탄건지 흐른 날에 탄건지 집에 와서보니 살이 많이 탔다. 더운데 중무장 하고 다니기도 싫고 그렇다고 선크림을 바르자니 그건 더더욱 싫고.. 살은 어찌 이리 쉽게 타버리는지. 휴가때마다 시골서 농사 짓고 왔냐며 놀림 받는 것도 이제 지겨운데 ㅠㅠ


아저씨 사진 찍는 자세에 맞춰 같은 자세로 찍고나니 역시 삐뚤어진 사진.


바윗결따라 난 구름.


길 한 가운데 선 나무.






멀쩡한 바위에 누구 좋으라고 저런 표시를 해둔건지..






멀리 보이는 촛대봉 중턱에 걸터앉은 세석 대피소.


세석에 가까워질 무렵부터 다리 상태가 안좋았는데, 잠깐이나마 들려 쉬려 했던 세석은 지나가는 길에 있지 않고 조금 내려갔다 와야 한단 이유로 그냥 지나쳤다. 내리막길은 이 때부터 이미 부담이 되었다.


촛대봉 정상이 머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지리산 어디에나 사람이 많았다. 다음엔 평일에 와야지.



기력이 쇠했는지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꺼비 한 마리.. 두 마리..

두꺼비 사진 보기










이 분 고무신 신고 산 타신다. -_- 발에 충격은 없으신지 등산화 신고도 쩔쩔매던 터라 마냥 신기했다.




장터목 가는 길.


기이하게 생긴 이 나무는 고사목이라 한다. 참 고지대에 어울리게 생긴 나무다.


장터목 거의 다 와서 만난 평평한 흙 길. 돌 길에 무릎아래가 만신창이가 되고나니 이런 길을 만나면 그저 고마웠다. 거의 다다랐을때쯤 이제 막 출발하신걸로 보이는 일행분이 물었다. 오는 길이 많이 험하던가요? 나도 모르게 하아 하고 한숨부터 나오니 일동 웃음. -_-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2시쯤 장터목 대피소 도착. 통증때문에 중간중간 쉰 시간이 많아 예상보다 늦었다. 시간상으로는 천왕봉 오를 여유가 되었지만, 상태가 별로 안좋아 고민을 좀 하다가 일단 식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도착해보니 여긴 이미 시장통. 주말이어선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오기 전에 들었던 지리산은 걷다보면 외로워서,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만날라치면 반가워 어쩔줄 모르게되는 그런 산이었는데.. 어쨋거나 지리산에 올라 처음으로 준비해온 음식을 제대로 된 곳에서 혼자 해먹었다. 사람이 워낙 많은데다 각자 노느라 바쁜지 통성명도 없고 여행객끼리 음식 나눠 먹을 일도 없고.. 이렇게들 정이 없어서야. 내가 심드렁한건 절대 옆에 앉은 부자가 맥주캔을 쌓아놓고 마시는 모습을 봐서가 아니다.
햇반에 카레에 인스턴트국까지 먹고 정리하니 이미 3시가 넘어 있었다. 제대로 밥을 먹고나니 몸이 가뿐해진듯한 느낌이 들어 천왕봉을 오르기로 하고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막차가 7시40분. 천왕봉까지 한시간. 내려가는데 1시간+2시간 하면 그럭저럭 서울가는 시간을 맞출수 있겠다. 오늘 종주를 마무리 하게되면 도착하자마자 반드시 맥주부터 마시고 말리라.


나뭇가지가 오른쪽을 향해 뻗어있다. 환경때문인지 유전자가 그리 생겨먹은 것인지..


황량한 오르막길. 시간때문에라도 되도록이면 쉬지 않고 열심히 올랐는데, 다행히(?)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면서 무릎 상태가 더 악화되지는 않았다.


시간에 충분했으면 당연히 쉬어 갔을텐데 지나치고나서 사진을 보니 배 깔고 대자로 누워 하늘 한 번 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이미 정상에 오르고 내려가는 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주었다. 오르는 표정이 힘들어보였는지 내려오는 분들마다 정상 얼마 안남았으니 힘내세요 하고 격려해주었지만 몇 번을 들어도 정상은 보이지 않아 좌절했을 뿐이고..


드디어 멀리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때쯤 만난 어떤 아저씨는 힘내라고, 자기는 노고단에서 하루만에 여기에, 나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라며 오르막길을 '뛰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리산엔 괴물같은 사람들이 왜 이리 많지.




천왕봉 정상에 올라와서 본 산세. 훌륭한 장면이지만 먹구름 끼고 사람도 많고 여유도 없고 다리도 아프다. 별다른 감상은 들지 않았다.






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내일 새벽 일출엔 더하겠지. 사진 찍는다고 줄도 선단다. 일출을 봐야겠다면 역시 평일에 오는게 좋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정상에 앉아 쉬다보니 어느새 4시. 내려갈 시간이다. 밥으로 채운 마취가 풀렸는지, 올라올 때 무리가 된건지, 편히 앉아 쉬었는데도 무릎과 발목이 욱씬거렸다. 끝이 안보이는 계단 위에서 내려가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답이 없어 보였다. 어쨋든 그렇게 시작된 지옥의 하산길.. 한계단 한계단 조심스럽게 내려왔지만 통증은 더 심해지고, 나보다 늦게 내려온 사람들이 하나둘 나를 앞질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쳐지고 또 뒤쳐지고... 계단 높이는 또 왜이리 높은지 욕지기가 나올 지경.

고무신을 넘어 이제는 맨발로 산을 내려가는 분 등장. 아 이분들 뭐지.. 내려갈 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무릎이 안좋은걸 아시길래 물어보니 자기가 옛날에 꼭 나 같았다 했다. 산에 자주 오고 운동 열심히 하면 좋아진다니 장비도 갖췄겠다 등산은 앞으로도 꾸준히 해야겠다. 물론 여름은 빼고..


보통 1시간 정도로 일정을 잡는 법계사까지 1시간40분씩이나 걸려서 겨우 도착했다. 쉬엄쉬엄 온 것도 아닌데.. 절에 들렀다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6시가 다 되어서야 로타리 대피소 도착. 시간상 서울행 버스도 위태위태해졌는데, 계산해보니 시내 나가면 가진 현금으로 1박을 더 하는 것은 무리겠다 싶어 우선 버스 타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행이 로타리 이후로는 그나마 내리막길이 평탄한 편이라 속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시간에 대한 압박에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는지 통증도 뭐 그럭저럭. 이 때쯤 실수로 카메라 조작실수로 메모리를 포맷해 버리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복원 가능성을 위해 카메라로 사진은 더 이상 찍지 않았다.


너른 바위에 잠시 앉아 쉬는데 초코바 냄새를 맡았는지 다람쥐가 앞에서 알짱거렸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기특한 다람쥐.


19:24 지라산 종주가 끝났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감상이고 뭐고 일단 터미널을 향해 뛰었다.


19:35. 터미널까지 택시를 잡아 겨우 버스시간에 맞출수 있었다. 택시비는 5천원. 서울 직행 버스는 아니고 원지에 가서 다시 서울행 버스를 타야 한단다. 이거는 3300원. 시간이 없다고 정신 없이 달려왔을땐 몰랐다가, 긴장이 풀리고 편한 자리에 앉으니 다리에 통증이 싸하게 올라오는게.. 원지에 도착하고 나서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일어나는데 통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절로 나는 신음소리.. 그나마 서울행 버스는 우등에 일인석이라 발 뻗고 편히 앉을 수 있어 다행이다. 서울에 도착했지만 지하철 계단은 도저히 엄두가 안나 남은 현금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00:09.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맥주 두 캔 사들고 기분좋게 집에 가는 길. 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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